* 본문은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원작자의 허락을 받고 퍼왔으며, 영어 한잔에서 작성한 글이 아닙니다. (3줄 요약 있음)
필자 소개
이직과 함께 옆나라로 건너와 어느덧 1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. 건너왔다고는 하지만 미국회사, 그 중에서도 일반적이라고 하기는 힘든 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니, 제가 일본에서 사는 이야기를 마치 여기에 사시는 모든 분들이 그럴 것이라는 듯 일반화 하여 이야기 하기는 힘들 것입니다. 하지만 영어와 일본어 두 외국어를 쓰며 생활하는 입장에서, 적어도 외국어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정도 할 수 있겠지요.
오늘은 주로 두 가지를 이야기 하고 싶은데, 먼저 1) 생활하고 일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외국어 능력의 수준, 2) 외국어 학습의 필요성에 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. 참고로 저는 일본이든 영어권이든 이 이전에 해외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습니다. 아마 어느 쪽이든 더 어렸을 때 살아봤던 경험이 있었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느낌이 달라졌겠지만, 아마 저와 같이 해외 경험이 없는 분들이 더 많겠지요.
일상 수준에서는 욕심만큼
첫번째 주제에 대해서는, 먼저 생활과 업무에서 요구되는 외국어의 수준은 꽤 다르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.생활에 있어서는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요구되는 수준이 꽤 다를 겁니다. 하지만 일반적으로, 뭔가를 주문하거나 하는 정도의 회화는 대체로 크게 어려울 것이 없고, 간판이나 문서를 읽는 정도야 구글렌즈나 다른 도구의 도움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으니 사실 딱히 높은 수준이 요구되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. 하지만 문화생활을 즐기는 분이라면 꽤 높은 수준이 필요하겠지요.
제목이 일본살이이니 그에 걸맞는 얘기를 해보자면, 이자카야 같은 곳에서 손글씨로 휘갈겨 쓴 메뉴판을 읽는 부분이라든지는 현지 분들도 꽤 알아보기 힘든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. 완전 일본인인데도 종업원에게 이 한자를 어떻게 읽는지(특히 일본 술의 경우) 물어보는 일도 왕왕 발생하구요. 이런 경우는 구글렌즈 같은 도구도 잘 먹히지 않죠. 그리고 음독, 훈독이 나눠져 있는 일본어 특성상 이 한자를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읽는 것이 맞는지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. 물론 좀 익숙해지면, 알고 있는 단어를 사용해서 추론하면서 헤쳐나가게 됩니다.
비즈니스의 경우
업무는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. AI를 사용해서 문어체에 있어서 사용되는 문장이나 어휘의 수준을 높일 수는 있지만, 기본적으로 업무에서는 좀 더 적시성이 필요한 경우가 많지요. 예컨대 회의를 주재하거나 발표하는 자리에서 일일이 AI 도구를 설정하거나 하기는 힘듭니다. 나중에 자동 회의록 작성 및 요약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요. 특히나 이해관계자와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장면에서는 AI의 도움은 거의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에 상당히 높은 외국어 능력이 필요하게 됩니다.
재학생 후배님들의 입장에서 알기 쉽게 말하면, 업무에서 필요한 외국어 수준이란 내 전공 과목을 타인에게 잘 설명하고 토론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. 좀 더 고급진 수준으로 가면 어떤 장면과 문서에 맞는 어휘나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이겠지만, 이건 익숙해지면 어느 정도 해결되는 문제가 됩니다. 특히 AI가 잘 도와줄 수 있는 분야지요. 한 가지 덧붙이자면, 토론하고자 하는 그 분야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외국어로는 더더욱 말하기가 힘들다는 점입니다. 그런 경우는 아마 한국어로도 잘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. 따라서 업무적인 외국어 능력은 결국 그 업무와 배경에 대해서 얼마나 빠삭하게 알고 있느냐가 어느 정도 좌우하는 면이 있습니다.
만약 AI 툴이 이런 부분까지도 대체하고자 한다면, 화자가 뱉는 언어를 즉시 청자가 가장 편한 언어로 들을 수 있게끔 변환해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할 텐데, 이 수준까지 가려면 지금의 기술 발전 속도를 생각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합니다. 특히나 한국어, 일본어 같이 맥락이 중요하면서 또 기계가 학습할 언어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 언어라면 더 시간이 걸리겠지요. 영어는 좀 더 빠를 수 있겠습니다만,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실생활에서 언어 변환에 필요하면서 언제나 휴대할 수 있는 하드웨어가 필요하고 또 그것이 누구나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가격으로 상용화가 되어야 할 텐데, 그 시점이 언제 올지 아직 상상이 잘 안 됩니다. (그게 초기적인 단계에서라도 됐다면 아마 회사에서 꽤 알려졌을 텐데, 아직 전혀 그런 기색은 없습니다)
이런 현 상황은, 적어도 일본에 있어서는 외국어 능력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더더욱 높이는 기제가 되어 있습니다. 일본의 경우 한국보다 더 일찍 고령화 사회에 들어섰고, 그만큼 경제활동인구가 실시간으로 빠지고 있기에, 학생들에 대한 외국어 학습 압력 자체가 낮습니다. 때문에 좋은 대학교를 나왔다고 해도 일어 밖에 구사할 수 없는 인재들이 많지요(사실 이 부분은 고대도 마찬가지일 테지만…). 영어 안 해도 밥벌이 하러 갈 기업이 많거든요. 그런데 글로벌 기업들이 아시아 헤드쿼터를 둘 때 보통 싱가폴이나 도쿄에 두는 경향이 있기에 영어와 일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인재에 대한 수요는 예나 지금이나 꽤 높습니다. 같은 맥락에서 일어+영어가 되는 외국인에 대한 수요도 상당히 높지요. 어느 정도로 높냐면, 회계, 재무, 인사 같이, 한국이라면 영어 하는 한국인이 가져가는 직무에 대해서도 저 같은 외국인을 채용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는 정도입니다. 생각해보니 한국법인의 경우는 다들 한국분들(많은 경우 유학파 출신들이긴 합니다만)이 맡는 직무네요.
영어 등 외국어의 파급력
많은 사회인 교우분들이 이미 이야기하셨을 것이고, 공감하실 것이듯 외국어는 곱연산입니다. 특정 직무경험이 있고, 거기에 외국어가 더해지면 더 강력한 효과를 내지요. 특히 전체적으로 인재가 부족한 시장(노동시장에서 공급자 주도의 시장)의 언어에 영어가 더해지면 거의 제곱연산이 되는 것 같습니다. 어느 정도 커리어가 있고 여기에 다개국어가 더해지면, 정말 많은 기회가 열리게 됩니다. 그 기회는 오는 오퍼의 수준이나 양을 보면 느낄 수 있지요. 비교가 안 됩니다. 한국에서 이 점을 잘 느끼기 힘든 건 노동시장 자체가 아직 공급자 주도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기 때문일 겁니다. 하지만 아마 10년쯤 후라면, 최소한 노동시장 만큼은 결국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. 글로벌 기업들의 아시아 헤드쿼터가 그 시점에 굳이 서울을 선택할 리는 없으니 아마 선택권이 늘어나는 체감은 좀 다를 수 있겠지만요.
그런 의미에서 외국어 학습은, 특히 대학생이신 후배분들의 경우 아직까지는 정말 많이 필요하고,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. 다행히도 가성비도 대단히 높아졌다는 느낌이 듭니다. AI 도구를 학습에(특히 회화에) 사용할 수 있기도 하고 외국어 컨텐츠도 넘쳐나니까요. 특히나 영어+일어 조합은 한국인 입장에서는 배우는 가성비 측면에서 꽤 매력적인 조합입니다. 영어야 어렸을 때부터 학습 경험이 있을 것이니 차치하고, 일어는 읽기/쓰기는 한자 등이 있으니 시간이 걸리겠지만 회화를 아주 쉽게 배울 수 있거든요. 저는 중국어도 꽤 공부했었는데(재학생 시절에 따긴 했지만 HSK 6급 정도), 일어 쪽이 훨씬 가성비가 좋습니다. 중국어의 효용이 있다면 중국계 기업에서 이걸 보고 오퍼를 주는 겁니다만, 사실 딱히 끌리지도 않고 업무적으로 쓸 수 있는 레벨이라고 생각되지가 않아서 없는 셈 치고 있습니다…
글이 길고 중구난방이 되었습니다. 세계를 보는 눈이 생긴다, 관점이 넓어진다 뭐 이런 말보다도(사실이기도 하고, 외국어 학습의 큰 재미이기도 하지만), 외국어가 ‘아직도’ 중요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으셨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. 선후배님들 주말 잘 보내시고 건승하시면 좋겠습니다.
세줄 요약
1) 외국어 능력에 있어서 업무와 생활에서 요구되는 수준이 꽤 다르다. 2) 외국어 능력 아직도 중요하고 리턴이 꽤 크다. 특히 영어+일어 시너지가 크다. 3) AI 대체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고, 오히려 AI를 이용한 외국어 학습이 용이해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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